자녀교육

부모의 속마음: 말하지 못한 걱정

내가 부모다 2025. 7. 8. 13:44

이민자의 삶은 언제나 낯섦으로 시작됩니다. 마트에서 물건 하나를 사려해도, 아이의 학교 행사에 참석하려 해도, 그 작은 순간마다 머뭇거리는 발걸음과 조심스러운 눈빛이 따라붙습니다.

미주 땅에 뿌리를 내린 한인 1세 부모들은 겉으론 강해 보이지만, 사실 마음 속엔 늘 작은 파도가 일렁입니다. 언어의 벽 앞에서, 문화의 문턱 앞에서,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국식 부모 역할’ 앞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를 되묻습니다. “나는 좋은 부모일까? 잘하고 있는 걸까?”

아이들은 이 땅의 언어와 문화를 금세 배우고 친구들과 자연스레 어울립니다. 반면 부모는 여전히 영어 문장의 맨 앞에서 멈칫하고, 이메일 한 통을 보내기 위해 몇 번이나 번역기를 켜고 끕니다. 그 간극은 아이의 성장과 함께 점점 더 벌어집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웃으며 떠나간 뒤, 남겨진 집안에 맴도는 고요는 종종 부모를 더 깊은 외로움으로 이끕니다. 그 고요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혹시 아이가 학교에서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이 목소리 뒤에 혹시 숨겨진 외로움은 없을까?”

미국 내 한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약 40%가 자녀의 불안과 우울을 매우 걱정한다고 합니다. 한인 부모들은 그 비율보다 더 클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 ‘모범적인 아이’로 평가받기 위해 스스로를 얼마나 많이 다그치는지, 부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꺼내놓을 곳은 많지 않습니다. 낯선 땅에서 부모는 늘 강해야 한다고 배워왔으니까요.

가끔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자 중얼거립니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아이가 잘 자라주어 고맙고, 그저 아이가 웃는 얼굴로 집에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부모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미안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더 자연스럽게 도와주지 못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해서, 또 때로는 아이가 흘린 작은 신호를 놓쳐서.

이민 1세 부모에게 ‘부모’라는 역할은 단순한 보호자가 아닙니다. 언어 장벽을 넘는 통역자이자, 문화 간 다리를 놓는 해석자이며, 동시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그 모든 순간이 결국은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채우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이와 나 사이에 놓인 침묵마저 언젠가는 따뜻한 대화로 바뀌길, 이 불안과 두려움이 결국은 아이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주길.

어쩌면 이 모든 걱정은 부모가 될 때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부모는 없지만, 불완전한 마음속에도 가장 순수한 사랑이 피어납니다.

오늘도 아이의 방문 앞에 잠시 멈춰 섭니다. "오늘 하루도 잘 다녀와 줘서 고마워. 네가 웃어 주어서, 네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지켜줘서 정말 고마워." 그렇게 조용히 중얼거리고 돌아서는 그 순간, 부모는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낯선 땅에서 길을 찾는 부모의 여정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그러나 이 길 끝에 아이와 나, 그리고 우리가 함께 쌓아온 작고도 단단한 사랑이 남아 있을 거라는 희망만은 놓지 않으려 합니다.

혹시 오늘 밤, 마음 한켠이 시리고 불안하다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싶습니다. “괜찮아요. 우리도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등을 토닥여 주며, 내일도 다시 아이의 이름을 불러 주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