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아이가 속상한 얼굴로 집에 들어왔습니다. 가장 친한 미국인 친구와 작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엄마, 걔가 나한테 기분 나쁜 말을 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서 더 화가 났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에서 친구와 서운했던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지냈던 제 학창 시절이요.
한국에서는 친구와 갈등이 생겨도 정면으로 이야기하기보다, 분위기를 살피며 ‘그냥 넘어가는’ 문화가 익숙했습니다. 속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게 ‘의리’ 같았고, 직접적인 표현은 오히려 관계를 더 어색하게 만든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미국 문화에서는 달랐습니다. 갈등이 생기면 조용히 따로 만나 솔직하게 말하고,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약함이 아니라,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라고 믿는 것이죠.
딸아이에게 “조금 참아보는 건 어때?”라고 말하려다, 멈칫했습니다. 미국에서 자란 아이에게 그 말은 오히려 답답하고 거리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그 친구에게 너의 마음을 솔직하게, 부드럽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진짜 친구라면 네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 거야.”
그날 밤, 저는 이민자로서의 삶이 우리에게 얼마나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을
안겨주는지를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한국의 정서 속에는 따뜻한 배려와 인내가 있지만, 미국의 문화는 감정과 관계를 건강하게 다듬는 도구로서의 ‘표현’을 강조합니다. 두 문화 모두 소중하고, 우리 아이들이 그 중간에서 균형을 잡으며 자라 간다는 것이 참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자녀도 친구와의 갈등으로 속상해하고 있나요? 그럴 땐, “참아라”보다는 “네 마음을 말해보자”고 손을 잡아주세요. 우리 세대가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관계의 새로운 언어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 안의 한국과 미국이 아름답게 대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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